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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준 칼럼] 부실투성이 투·개표시스템, 개혁 후 총선 치러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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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1. 2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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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준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선거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시작이자 최후의 보루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자치단체장을 4~5년 주기로 뽑는다. '국민의 공복'을 뽑는 장치가 고장이 나면,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선거의 투·개표 과정은 허점투성이다. 투·개표 과정이 복잡하고 '매듭'이 많다. 부정이 스며들 틈새가 많다. 그래서 선거가 끝나면 으레 부정선거 시비가 인다. 특히 박빙의 승부가 도처에서 치러지는 총선 후에는 더욱 그렇다.

대만 등 경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 등 선진국과 대조적이다. 선거관리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우선하지 않고 편의주의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 전체 투·개표 과정이 복잡하고 투·개표 관리시스템에 하자가 적지 않다.

'글로벌 슈퍼 선거의 해'를 연 대만의 총통 선거가 신속·투명하게 치러져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만약 대만의 투·개표 관리시스템이 부실했다면 어땠을까. 통일에 '진심'인 중국의 선거개입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선거 후 부정선거 시비로 나라가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대만에는 '선거관리위원회'라는 정부 기구가 아예 없다. 그런데도 투·개표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전투표제도도 없다. 투·개표 과정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갈등은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당일 투표, 종료 즉시 현장 수개표만 있다. 투표 전에 투표자 신원을 엄격하게 확인하고, 투표지의 동선을 최소화해 부정·조작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 IT 강국이지만, 개표현장에 전자개표기는 없다. 아날로그식이지만 단순하고 투명하게 일사천리로 개표가 이뤄진다. 전적으로 전자개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를 이룬다.
독일과 프랑스 등 일찌감치 전자 투·개표를 도입했던 선진국들도 수년 전부터 현장투표와 수개표로 바꾸고 있다. 해킹으로 선거 결과가 조작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완전 수개표로 전환했다. 캐나다, 스위스, 스웨덴 등 선거 역사가 깊은 선진국들도 전면 수개표로 전환했다. 투·개표의 신뢰성과 투명성 우선 원칙은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 투·개표의 시간과 공간은 너무 길다. 투표 개시와 종료, 개표에 이르기까지 모두 5일이 걸린다. 부재자 투표와 해외투표, 우편투표 등의 사전투표와 당일 투표 등으로 나뉘고 사전투표일은 선거일 5일 이전부터 2일간 실시된다. 이 사전투표가 온갖 '부정선거 시비'의 온상이다.

지난 총선에서는 사전투표와 당일 투표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총선 사상 최고 투표율 36.9%에 달했던 사전투표로 더불어 민주당이 253개의 지역구 중 200곳 이상에서 1위를 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당일 투표로 당선자를 산출하면 원내 제1당이 될 정도로 차이가 확연했다. 이는 보수층 일각의 '사전투표 조작 음모론'을 펼치는 배경이 됐다. 사전투표는 지난해 강서구청 보권선거에서 역대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최고 투표율인 22.6%를 기록했다.

우리 투·개표 과정엔 너무 많은 틈새와 지체가 있다. 선관위는 그동안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 제도적으로 답해야 한다. 시간과 공간상의 허점, 과도한 기계 의존 등이 그것이다. 먼저 사전투표에서 투표자수를 세는 사람이 전혀 없다. 투표자수가 주민등록과 선거인명부에서 서로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선거사무원과 투표참관인이 사전투표자수를 공식적으로 아날로그적으로 세서 선거인명부가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점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공직선거법은 바코드를 쓰라고 하지만, QR코드를 사용한다. 선거법은 또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공무원증으로 신분증을 한정했지만, 선관위는 외국인등록증, 자격증, 학생증 등 온갖 증명서로 신분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우편투표, 해외투표, 거소투표 등 부재자 투표 관리도 부실하다.

투·개표 시차가 5일 이상인데 선관위는 투표함에 대해 CCTV 감독을 불허한다. 선거법은 투표관리관 본인의 사인(私印)을 찍으라고 하지만, 선관위는 프린터로 인쇄된 공인(公印)이 찍힌 사전투표용지를 출력한다. 그래서 선관위의 투표함 관리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안전한 개표를 장담할 수 없다. 사전투표용지 바꿔치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전자개표기의 신뢰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국가정보원의 선관위 검사에서도 지적됐다. 선관위의 선거관리시스템 해킹 가능성 등 전자개표의 위험성이 경고됐다. 현실적으로 전자개표기 오작동 역사적 사례가 적지 않았다. 2010년 12월 대선 때 전자개표기 오차율이 5% 이상 되는 곳이 수두룩했다. 부재자 투표의 경우 부산북구의 미(未)분류표가 무려 4112매(오차율 63%)에 달했다. 그래서 전자개표기 분류 후 수검표 요구는 그만큼 필요했고 절박했다.

그다음 '특수 봉인지는 믿을 수 있나'란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임의 개봉을 방지하기 위해 투표함에 종이를 붙여 밀봉하고 그 위에 자필서명을 했는데, 현재는 비닐 재질의 파란색 특수 봉인지를 사용하고 있다. 공무원 입회 실험에서 특수 봉인지를 일정한 방법으로 떼어낼 경우 떼어낸 자국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준 바 있다.

현재 세계적인 투·개표 방식은 현장투표와 수개표가 대세다. 프랑스는 2017년부터 일부 선거구를 제외하고 기표소 직접투표와 수개표로 전환했고 독일도 2009년 전면 수개표로 돌렸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소프트웨어 하자와 결과조작 여부를 유권자가 알기 어렵다며 '전자 투개표 시스템 사용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정치 갈등이 격렬한 우리 정치 현실상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 추세다.

투·개표 등 기본적인 선거관리제도의 문제점이 정치 갈등을 부추기고 확대재생산해서는 곤란하다. 선관위의 전반적인 시스템의 하자와 신뢰성의 위기도 심각하지만 우선적으로 투·개표 방법이 유권자 친화적으로 전환되고 개선돼야 한다. 선관위의 집단이기주의와 맹목적인 편의성 추구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투·개표제도 개선은 민주주의 혁명을 이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제도화를 위한 절박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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