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윤석명의 연금개혁 이야기] 연금개혁 논의, ‘이념’ 아닌 ‘수치’에 집중하길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china.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014010007270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0. 14. 17:48

2024100701000536400032051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영국 처칠 수상의 국민연금 '수지상등 원칙'

작금에 한국에서 진행되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연금 논쟁을 지켜보고 있는 한 사회복지학자의 평가다. "20세기 초 영국이 국민연금을 도입할 시기에 처칠은 '수지상등 원칙', 즉 부담하는 보험료 총액이 지급할 연금액의 총액과 같도록 균형을 꾀하는 원칙을 전제로 한 사회보험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연금 수리의 안정성(Actuarial Soundness)'을 확보해야만 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어서였다.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연금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대 간 공정성 확보와 함께,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한 세입과 세출의 균형이 필수임을 이해하고 있어서였다." 이는 연금연구회 소속인 김학주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평소 강조하는 내용이다.

◇"부담은 남에게 혜택은 내가" 보려는 것은 '법적 약탈'에 해당

한국의 연금 논쟁, 특히 정치인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부담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서도 혜택은 우리가, 그것도 충분하게 받아야만 한다"는 입장을 옹호하는 것 같다. 지난 3월 국회 연금특별위원회 산하의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 결정을 지키라는 정치권, 주로 야당의 거듭된 요구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부담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서 자기만 혜택을 다 차지하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은 저명한 경제학자 바스티아가 강조한 바 있는 '법적 약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부의 자동조정장치 제안은 '법적 약탈' 줄이려는 것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등은 정부 연금개혁안이 "시민대표단의 '더 내고 더 받자는 국민적 합의'에 역행한다"고 했다. 김남희 민주당 의원과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정부 제안의 자동조정장치가 젊은 층의 연금액을 더 많이 삭감할 것이라면서, "정부안은 노후소득보장이 아닌 재정안정에만 신경을 쓴다"고 비판한다. 특히 "공적연금 강화 측면에서 볼 때 '연금을 자동으로 깎으려는 자동조정장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들을 하는 이유는 정부가 자동조정장치를 제안한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인 듯하다. "현재의 국민연금제도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젊은층과 미래세대가 법적으로 약탈당할 연금액이 상상을 초월할 수 있어서, 그들이 당하게 될 불이익을 줄여주기 위함"인데도 말이다.

◇공론화위원회, "세대간 보험료 21.3%포인트 격차" 시민대표단 학습자료에서 삭제, 시민대표단 이를 모르고 결정

그러다 보니 시민대표단 의사결정 과정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학주 교수가 강조했던 것처럼 "재정적·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한 연금 제도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세대 간 공정성과 세입·세출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연금개혁 내용에 대해 충분히 학습받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다.

시민대표단 다수가 선택한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 안은 2005년생(14.8%)과 2035년생(36.1%)의 생애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이 21.3%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문제는 시민대표단이 이 중요한 정보를 모르고 결정했다는 점이다. 처음 인쇄한 학습자료에 있었던 이 내용을 공론화위원회가 삭제한 뒤, 새로 인쇄해서 시민대표단을 학습시킨 자료에는 이 내용이 빠져있어서다. 이 사실은 국회 연금특위 여당 간사인 유경준 전 의원에 의해 알려졌다. 이하 내용은 유경준 전 의원 보도자료인 '3일 사이 뒤바뀐 수상한 국민연금 시민대표단 설명 자료집'에 근거한다.

◇시민대표단, '후세대에 더 덤터기를 씌우는' 것 모르고 선택했을 것

보건복지부 제출 자료에는, 시민대표단 다수가 선택한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 안을 채택할 경우의 '수지균형 보험료율'과 '부과방식 보험료율' 수치가 있었다. '수지균형 보험료율'은 국민연금에 가입한 개인이 "2024년부터 40년 가입하고 25년 동안 연금을 받는다는 가정에서 연금액과 보험료를 똑같게 하는 보험료율"을 의미한다.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의 경우 "2024년에 보험료율을 13%, 소득대체율은 50%로 즉시 인상할 경우의 '수지균형 보험료율'이 24.8%이다. 재정안정을 위해 제시한 보험료 13%보다 11.8%포인트나 더 높다."

"한 해의 연금 지급을 위해 당해연도에 가입자가 내야 하는 보험료를 의미하는 '부과방식 비용률'은 2078년에 43.2%까지 치솟는다. 1998년부터 부담하고 있는 보험료 9%보다 4.8배나 더 많다." 이 내용을 시민대표단이 학습했다면 학습 이전과 달리 '후 세대에게 더 덤터기 씌우는 안'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주장해 왔다. 필자가 소속된 연금연구회가 지난 4월 3월 국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연금개혁 청년행동' 여론조사: 재정안정론(44.9%) 〉소득보장론(21.7%)

10월 13일에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론 조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바른청년연합' 등의 청년 단체 모임인 '연금개혁청년행동'이 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만 18세 이상 국민 1001명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서 얻은 결과를 통해서다.

'연금개혁청년행동'은 응답자에게 '적자 구조의 국민연금 개혁방안 중에서 가장 찬성하는 방안'을 선택하게 했다. '소득보장을 위해 연금지급액을 늘리는 데 중점(소득보장론)', '재정안정을 위해 미래세대 빚을 줄이는 데 중점(재정안정론)', '미적립부채는 국고로 해결하고 국민연금은 폐지(국민연금 폐지론)' 등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응답자 44.9%가 재정안정론을 선택했다.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위해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더 올려야 한다는 답변은 21.7%에 불과했다. 국민연금 폐지는 20.7%가 찬성했다. '10명 중 4명' 이상이 연금재정을 튼튼히 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데 동의했다.
미래세대 부담을 덜자는 취지에서 연금폐지론을 찬성했다고 간주하면, 재정안정론이 65.6%에 달한다. 소득보장 강화보다는 재정안정을 훨씬 더 선호한다고 '연금개혁청년행동'이 해석한 이유다.

21대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 조사에서 시민대표 500명이 '더 내고 더 받는' 안인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 안을 선택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미적립 부채 1800조원' '기금고갈 후 보험료율 35%' 등 핵심정보를 알 때와 모를 때 상반된 여론조사 결과 나와

불과 7개월 사이에 상반된 결과가 나온 이유가 무얼까? 제공한 정보 차이 때문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지급 약속한 연금액에 비해 1800조원 이상이 부족하다(미적립부채)'는 사실과 '기금고갈 후에 부과식으로 전환하면 보험료율이 35%까지 상승한다'는 사실을 인지시킨 후에 연금개혁 방향을 질문해서다.

핵심 정보 제공 여부가 연금개혁 방향을 결정한다고 확신하는 배경이다.

◇정치권도 연금 문제는 '이념' 아닌 '수치'로 접근해야

김학주 교수 고언이다. "전문가는 '이념'이 아닌 '숫자'로 접근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은 이념에 매몰된 논의가 아닌, 데이터에 근거한 전문가 논의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

우리 정치권은 연금 수지상등 원칙을 전제로 사회보험제도 도입을 찬성했던, 공적연금 운영에 대한 처칠의 이해 수준에 언제쯤이나 도달할 수 있을까? 기다린다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 같아서는 그렇지 못할 것도 같아서 답답한 심정이다.

윤석명 (보건사회연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