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시대 렘브란트'이자 백남준 제자...사후 첫 국내 전시 열려 내년 1월 26일까지 국제갤러리..."주요 초기작 선보여, 4점은 국내 첫 공개"
[Kukje Gallery] Bill Viola_Artist Por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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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시대의 렘브란트'로 불리는 미국 비디오아트 거장 빌 비올라. /국제갤러리
미국의 비디오아트 거장 빌 비올라(1951~2024)는 삶과 죽음, 물과 빛 등을 다룬 명상적이고 깊이 있는 작업으로 '비디오 시대의 렘브란트'로 불린다. 한국의 대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5년 백남준이 '과달카날 레퀴엠'을 제작할 당시 촬영감독으로 일했다. 안타깝게도 비올라는 알츠하이머 투병 중 지난 7월 세상을 떠났다. 비디오, 설치 미술 분야의 개척자로 비디오 아트를 중요한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정착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비올라 사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전시다. 그의 삶과 작업세계를 핵심적으로 아우르는 작품 7점이 선보인다. 1970년대 초기 비디오 작업부터 199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미국관 전시작, 2006년 작업까지 아우른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비올라 스스로도 중요하다고 여긴 초기작들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그의 아내가 직접 고른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시를 통해 작가가 초창기에 어떤 실험을 했는지 볼 수 있다"며 "전시작 중 4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고 덧붙였다.
[국제갤러리] 빌 비올라_Moving Stillness_ Mount Rainier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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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의 영상 작업 '무빙 스틸니스: 마운트 레이니어 1979'(Moving Stillness: Mount Rainer 1979). /국제갤러리
하이라이트는 K3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영상 작업 '무빙 스틸니스: 마운트 레이니어 1979'(Moving Stillness: Mount Rainer 1979)이다. 공중에 매달린 스크린에 투사된 산의 이미지가 스크린 바로 아래 물 웅덩이에 반사되는 구조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전시장의 퍼포머가 물에 물결을 만들어내면 물 표면의 일렁임에 따라 산의 모습이 함께 흔들린다. 즉, 물의 표면에 생기는 약간의 파동에도 강직하고 불변하는 이미지로 각인된 산의 개념이 흐트러지게 되는 것. 한번 흔들린 물과 산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잠잠해지며 안정을 되찾는다. 작가는 정적이고 단단한 이미지의 산을 취약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제시해, 관람자로 하여금 원래의 산이 가진 성격을 고찰하도록 한다. 윤 이사는 "수동으로 물결을 만들면 흔들리던 산이 제자리를 찾는데 십 분 정도 걸린다"며 "기다리는 동안 관람객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이를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빌 비올라1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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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의 '더 리플렉팅 풀'(The Reflecting Pool. 1977∼1979/1997) 전시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K1 전시장의 2층에 설치된 '더 리플렉팅 풀'(The Reflecting Pool. 1977∼1979/1997)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한 남성이 야외 수영장에 뛰어들기 위해 도약하는 순간, 마치 웅크린 태아 같은 모습으로 정지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호수에 빠져 거의 익사할 뻔한 찰나의 순간에 수면 아래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체험을 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비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회화, 뉴미디어, 인지심리학, 전자음악을 수학하고 미국 시러큐스 대학에서 실험적 스튜디오 학과의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미국을 대표해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세계 유수 미술관에 그의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특히 비올라는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위한 두 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는 영국 내 성공회 성당에 최초로 영상 작품이 영구 설치된 사례다.
비올라는 "내 작품이 존재하는 가장 결정적인 곳은 미술관도, 상영관도, 텔레비전도, 심지어 스크린도 아닌, 바로 그것을 보는 관객의 마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 7점 역시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전시는 내년 1월 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