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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젤렌스키와 아프간 대통령, 그리고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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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0. 24. 10:03

군통수권자 젤렌스키와 전 아프간 대통령의 리더십
우크라 천문학적 지원 바이든, 자주국방 의지 결여 아프간 미군 철수
박정희, 월남 패망 '3가지 교훈'
하마스·헤즈볼라 수장 제거,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힘
MJ Ha 증명사진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과 친이란 시아파 무장단체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쟁은 군 통수권자의 리더십, 정보기관, 그리고 전 국민 총력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의 전면적인 침공 당시 우크라이나가 길어야 몇주 버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양국 군의 화력 차이를 근거로 서방에선 '이틀 이내 우크라 정부 붕괴'를 내다보기도 했다.

러시아군이 전쟁 초기 특수부대를 통해 키이우 공항을 일거에 점령해 우크라이나 수도를 점령한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다가 수송기 격추로 실패한 것도 이러한 전망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법대를 졸업한 희극인 출신 40대 중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은 2년 8개월간 꿋꿋이 전쟁을 수행해 왔다. 공식 석상에서 양복을 주로 입던 과거와 달리 시종일관 군복 바지에 짙은 올리브색 티셔츠 차림으로 항전 의지를 우크라이나 국민과 전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
젤렌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의원들 등이 16일(현지시간) 키이우 의사당에서 진행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공보실 제공·AP·연합뉴스
◇ 군통수권자 젤렌스키와 가니 아프간 대통령의 리더십이 가른 국가 운명

젤렌스키의 리더십은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의 카불 입성이 임박하자 가족·참모진과 자동차에 현금다발 싣고 달아난 아슈라프 가니 당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대비된다. 그의 도주 이틀 후 수천명 아프간인들이 카불공항에 몰려들었다. 필사의 탈출은 인도차이나 공산화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탈레반 치하에서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미군 수송기에 탑승하고자 필사적이었고 매달렸다가 떨어져 죽는 등 처참한 장면이 펼쳐졌다. 1975년 베트남 사이공 함락 이후 미 외교·군사 역사상 최악의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이 1975년 5월 23일 최전방 부대를 시찰하고 있다./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홈페이지 캡처
◇ 박정희, 월남 패망의 교훈 △ 평화협정의 허구성 △ 우방 지원의 한계 △ 국론 분열의 위험성

젤렌스키의 리더십은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 전날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국가 안보와 시국에 관한 특별 담화'를 연상시킨다. 박정희는 김일성이 남침하면 자신을 포함해 모든 국민이 전방·후방에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며 겁먹고 자기만 살고자 보따리 챙기는 몰염치한 국민이 있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10대 소년 시절, 이 연설을 듣던 순간의 느낌이 생생하다. 대다수 한국인이 그랬을 것이다.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하며 공감했고 다소 안도했던 것을 기억한다.

박정희는 월남과 캄보디아 공산화의 교훈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 힘의 균형 내지 우위 없이 공산주의자와 맺은 평화협정·조약·긴장 완화·화해 등 거래의 허구성 △ 자국 수호 결의·능력이 없을 경우 우방 지원 획득 불가 △ 국론 분열·혼란시 유사시 저항력 발휘 불가 등이다.

박정희는 그날 저녁 일기에 충무공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를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김정은이 푸틴을 지원하기 위해 특수부대 등 북한군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해 드론 등 현대전 경험을 쌓을 것으로 전해진 현 상황에서 특히 필요한 각오다.

박정희의 '교훈'은 훗날 북한에 굴종적인 우리나라 정부들이 내세운 '평화론'의 허구성과 대비되며, 우크라이나와 아프간의 운명을 가른 원인을 지적한 선견지명이기도 하다.

카불공항
수백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021년 8월 16일(현지시간) 미군 군용기가 이륙하는 카불공항 활주로를 달리고 있다./AP·연합뉴스
카불 공항
수백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021년 8월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국 공군 화물 수송기 C-17 글로브마스터에 탑승하고 있다./AP·연합뉴스
◇ 미-북베트남, 미-탈레반 평화협정 후 월남·아프간 함락
우크라 전쟁 2년 8개월, 천문학적 지원 바이든 "정부군, 아프간 지킬 의지·능력 없으면 미군 철수"

미국이 북베트남과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 협정에 서명한 후 2년3개월여만에 베트남이 함락됐다. 2020년 2월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탈레반의 평화협정 체결, 2021년 4월 중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미군 철수 발표 후 4개월 만에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점령했다.

바이든은 탈레반이 아프간 34개 주도 중 24곳을 점령한 2021년 8월 14일 현지 정세 관련 성명에서 "아프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없거나,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미군이 1년 또는 5년 더 주둔해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다른 나라의 내전에 미군의 끝없는 주둔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프간과 우크라에서 박정희가 역설한 자주국방 의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교훈의 중요성은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기습으로 촉발된 가자전쟁에도 적용될 것이다.

신와르
16일(현지시간)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탈 알술탄 인근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살되기 직전 저항하는 모습으로 이스라엘군이 17일 공개한 드론 영상에서 캡처한 사진./AFP·연합뉴스
헤즈볼라
이스라엘 방위군(IDF)가 9월 28일(현지시간) 발표한 레바논 내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군 지휘체계로 하산 나스랄라 최고지도자(사무총장)와 함께 핵심 지휘관 8명 중 7명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희생됐다./IDF 홈페이지 캡처
◇ 수장 '제거'로 하마스·헤즈볼라 와해 이스라엘, 자주국방·정보기관의 중요성 재확인...국내 정치 좌우 국정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바이든 행정부 등 서방 정부의 반대 속에서도 하마스와 헤즈볼라 해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습과 지상전을 1년 이상 지속해 오고 있다. 그 결과 16일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를 사살했고, 앞서 지난달 27일 공습으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해 이들 무장단체를 와해 위기에 몰아넣었다.

특히 이번 하마스·헤즈볼라 작전에서 주목할 점을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국내 담당)와 모사드(해외 담당)의 역할이다. 무장단체 수뇌부의 표적 제거, 수천대의 무선호출기(삐삐)·무전기(워키토키) 동시 폭발 사건을 통해 놀라운 기획력과 실행력을 과시하며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모양새다.

이스라엘과 비슷한 지정학적 운명을 가진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정보기관의 국내외 정보 능력은 좌파 정부를 거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재건이 시급하다. '안보엔 여야가 없다'고 했다. 이 여야가 사실상 대한민국과 반(反)대한민국의 대결이 돼선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위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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