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넘어 시장 '주도자'로
최태원, 'AI 솔루션'으로 제4의 퀀텀 리프…"전장 자체 바꾸는 10년"
삼성 HBM4 조기 출하로 '반격'...AI 메모리 패권 경쟁 '점입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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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HBM 시장 상황과 관련,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시간) 한때 채권단 소유의 '좀비 기업(zombie firm)'으로 불리던 SK하이닉스가 오늘날 HBM 시장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엔비디아의 필수적인 인공지능(AI) 동맹으로 부상했다며 글로벌 메모리 칩 부족 사태 속에서 SK하이닉스가 58%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FT "SK하이닉스 '추격자'서 판도 '주도자'로...메모리 병목 제약, 강점으로"
FT는 SK하이닉스의 성공이 AI 개발을 뒷받침하는 HBM 지배력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FT는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포함한 더 잘 알려진 칩메이커들을 제치고 AI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가 고속으로 흐르도록 하는 핵심 기술 HBM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주요 HBM 공급업체이며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자체 AI 칩 공급사로 선정됐고, HBM뿐 아니라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부족이 가격 상승을 견인하면서 SK하이닉스가 수혜를 누리고 있다고 FT는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66% 증가했고 영업이익률은 58%에 달해 세계 최대 칩메이커 대만의 TSMC보다도 높았으며 시가총액은 지난 12개월 동안 340% 급등해 640조원(4380억달러)에 이르렀다고 FT는 보도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FT에 SK하이닉스가 과거 '추격자(follower)'였으나 이제는 반도체 부문 판도 '주도자(shaper)'가 됐다며 "SK하이닉스가 메모리 제약 조건(병목현상)을 오히려 자신들의 강점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메모리 부족 현상이 2027년 4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향후 생산능력이 상당 기간 앞서 이미 선점돼 있다"며 "이제 모두가 메모리를 병목 지점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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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는 한국 청년층의 취업 선호도 변화도 소개했다. FT는 수년 동안 한국 청년들에게 가장 전형적인 목표가 삼성전자 입사였지만,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SK하이닉스가 한국에서 가장 선망받는 고용주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서울대 재학생 임희진은 FT 인터뷰에서 SK하이닉스가 '미래 잠재력이 매우 높은 정말 좋은 회사'라며 "친구가 그곳에 취업하면 '정말 대단한 곳에 들어갔다'며 '부럽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부활의 역사, 최태원 회장, 엔지니어 출신 CEO 지명 승부수...'하이닉스의 저주' 뚫어
FT는 현재의 성공이 과거 역사에서는 '판타지'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하이닉스는 1983년 현대그룹 산하에서 설립됐고,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0년대 초반 D램 과잉 공급을 거치며 장기간 '좀비 기업'으로 남아 있었다고 FT는 전했다.
FT는 마이크론이 2002년 32억달러를 제안했으나 하이닉스의 60억달러 부채 인수에 동의하지 않아 이사회가 이를 거절했다며 SK그룹이 2011년 3조4000억원으로 인수해 '하이닉스의 저주'를 끝냈다고 보도했다.
당시 SK텔레콤 내부에서도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슈퍼 모멘텀'을 공동 저술한 컨설팅업체 플랫폼(Platform) 9¾의 이인숙 콘텐츠 디렉터는 인수 반대론자들이 "그 회사를 인수하면 우리도 망한다. 돈만 쏟아붓다가 같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FT는 인수 직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자금 횡령 혐의로 기소돼 수감됐다가 사면을 받았는데, 최 회장이 하이닉스의 베테랑 엔지니어 박성욱을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한 것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디렉터는 박 CEO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그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불확실성 속에 남아 있던 직원들은 '도 아니면 모(do-or-die)' 식의 언더독 문화를 형성했고, 회식 자리에서 '갈 놈 가고, 남을 놈 남으라'의 한국식 영어 '콩글리시'인 "Go man go, is man is!"를 외쳤다고 F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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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CEO는 단기 재무 성과보다 장기 연구를 우선하도록 독려했고, 당시 소수만이 믿었던 HBM 기술에 집중하면서 SK하이닉스가 2010년부터 2024년까지 연구개발(R&D) 지출을 연평균 14% 늘렸다고 FT는 설명했다.
'반도체 전쟁(Chip War)'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AI 작업부하(workload)는 방대한 메모리를 필요로 한다"며 챗GPT 출시가 AI 서버 수요 폭발을 촉발한 뒤에야 하이닉스의 수년에 걸친 베팅이 마침내 결실을 봤다고 분석했다.
FT는 HSBC 리서치 노트를 인용해 HBM 시장이 2022년 10억달러에서 2024년 160억달러로 성장했고, 2027년에는 8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SK하이닉스 매출이 최근 3년 동안 44조6000억원에서 97조1000억원으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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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독주 속에 삼성전자는 12일 세계 최초로 업계 최고 성능의 HBM4 양산 출하를 발표하며 반격에 나섰다.
삼성은 11.7Gbps의 속도를 안정적으로 확보했고 최대 13Gbps까지 구현 가능하다고 밝혔다. 황상준 삼성전자 부사장은 1c D램 및 4나노 로직 공정 등 최선단 노드를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같은 AI 가속기 제조사에 첨단 메모리를 공급하는 경쟁에서 초반 리드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지난 몇 분기 동안 경쟁사들에 뒤처진 후 HBM4 시장을 지배하려 한다고 했고,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필수 부품 공급에서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시도라고 봤다.
FT는 엔비디아가 HBM을 사용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 85% 점유율을 갖고 있다며 공급사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더 높은 표준과 맞춤형 칩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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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는 SK하이닉스가 단순 칩 제조를 넘어 AI에 집중하기(double down) 위해 100억달러를 투입해 'AI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하려 한다며 최태원 회장은 AI를 '네번째 퀀텀 리프(quantum leap·비약적 도약)'로 규정했다고 보도했다.
최 회장은 울산에 7조원 규모의 한국 최대 AI 데이터센터 착공, 반도체부터 전력·에너지 솔루션까지 제공해 가장 효율적인 AI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FT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10년이 '전쟁터에서 싸울 수 있게 만든 여정'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전장 자체를 바꾸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FT는 AI 붐 이후 침체 가능성을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경계했다.


















